로타리 역사
로타리, 유럽에 진출하다
1912년 8월 1일, 영국의 런던 로타리클럽이 유럽 최초의 로타리클럽이 되었다. 그해 4월 캐나다 마니토바의 위니펙 로타리클럽이 창립되면서 로타리는 이미 국제적인 단체가 되었지만, 이로써 로타리는 유럽 대륙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런던의 회원들이 클럽을 창립한 뒤 창립 인증을 받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 당시의 사무총장 체슬리 R. 페리와 창립 회원 마서 P. 비글로는 로타리 가입과 회비 납부에 관한 회원들의 질문을 당시 미국 클럽들로 구성되어 있던 로타리클럽 전국 연합회에 제출했다.
페리 사무총장은 위니펙, 런던 및 기타 클럽들이 가입하게 될 경우 협회는 "국제 단체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이라며 "'전국'이라는 단어는 잊으라"고 말했다.
런던을 넘어
런던 클럽과 같은 날 4개의 미국 클럽이 창립되면서 전 세계 로타리클럽의 수는 50개가 되었다. 곧 로타리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 8개의 클럽을 가지게 되었다. 런던 클럽 다음으로 창립된 클럽들은 다음과 같다:
- 스코틀랜드 스트라스클라이드 글래스고 클럽: 1913년 4월 1일
- 북아일랜드 안트림 벨파스트 클릅: 1913년 5월 1일
- 아일랜드 더블린 더블린 클럽: 1913년 5월 1일
- 스코틀랜드 로디안 에든버러 클럽: 1913년 5월 1일
- 잉글랜드 그레이트 맨체스터 맨체스터 클럽: 1913년 5월 1일
- 잉글랜드 머시사이드 시티 오브 리버풀 클럽: 1913년 8월 1일
-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드 버밍엄 클럽: 1914년 4월 1일
그 후 1920년 1월 스페인에서 마드리드 로타리클럽이 창립되면서 로타리는 유럽 대륙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독특한 방식
에든버러 로타리클럽의 R.W. 펜틀랜드는 1913-14년 로타리 이사로서 클럽들 간의 연결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는 1913년 리버풀에 클럽 임원들을 소집해 우정과 단결을 도모하고 영국내 로타리클럽들의 활동에 표준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듬해 5월, 클럽 대표들은 런던에서 모여 영국 로타리클럽 협회(BARC)를 만들었다.
펜틀랜드는 1913-14년 로타리 회장인 러셀 F. 그레이너에게 협회 창설을 보고했고, 1914년 로타리 세계대회에에 모인 대표들은 협회 창설과 로타리의 목적을 증진하기 위한 협회의 노력을 비준했다.
클럽들은 BARC와 국제 로타리클럽 협회(현 국제로타리)에 동시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BARC 소속 클럽들은 국제 협회에도 가입할 것이 권장되었으나 몇 년 동안 이는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두 협회가 1년 넘게 의논한 후, 1922년 로스앤젤레스 로타리 세계대회에 모인 대표자들은 각국 또는 각 지역 로타리 단체들이 국제로타리의 해당 지역 행정을 담당한다는 내용으로 로타리 정관을 개정했다. 이러한 단체들은 해당 지역에서 클럽 참립과 인증서 발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및 아일랜드의 클럽들은 BARC를 통해 가입 신청 및 인증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되었다. 5년 후에는 지역별 단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금지되었으나 기존 단체들은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영국 및 아일랜드 국제로타리(RIBI)는 오늘날 로타리에 소속된 유일한 지역 단체이다.